2006년 5월 26일 금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납득하기 어려운 여당의 긴급호소
참 희한한 선거, 괴상한 정치를 다 본다. 열린우리당이 5ㆍ31 지방선거전 막바지에 내놓은 대국민호소문은 이런 일감(一感)을 갖게 한다. 선거운동 지원을 일시 중단하고 긴급회의를 연 것도 그렇지만, 채택한 호소문의 내용은 상식적으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거전 막바지에 여당이 절감하고 있을 낭패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초반의 참패 전망이 완화되기는커녕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 이후 더욱 굳어지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할 전망”이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진단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국민 호소문이 강조했듯, 지방정치에도 견제와 균형은 필요하다. 지방정치에서 독점이 장기화하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리고, 부패와 비효율이 늘어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이른바 싹쓸이 전망을 놓고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마비나 ‘생명을 걸고 지켜온 민주정치체제’의 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과장이 지나치다.
더욱이 민주평화 세력의 위기를 거론한 데서는 국민 일반의 인식과 동떨어진 독선적 오만까지 엿보인다. 설사 선거 결과가 현재의 전망대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을 반민주, 반평화 세력의 창궐이라고 여길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애초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중앙정권 심판론을 희석하기 위해 지방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적어도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로 보아 유권자들은 거기에 공감하지 않았다. 또 이번 선거에서의 선택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4년 뒤의 선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 마련돼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여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달렸다.`
여당이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거론하면서 정계 개편론을 들고 나온 것도 시의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매 맞을 일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달게 벌을 받고, 반성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지지를 되찾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한겨레신문] 기자 과반수가 공감하는 신문법
기자의 과반수가 신문의 사회적 책임과 다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신문법의 기본 취지에 동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위헌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을 두고, 한국언론재단이 신문·방송·통신사 기자 31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다. 특히 편집인을 ‘발행인이 선임한 자’가 아닌 ‘편집에 책임을 지는 자’로 규정하고 편집인의 자율적 편집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은 4명에 3명꼴로 법 취지에 동의했다고 한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주의깊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거나 전문적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언론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시에, 법으로 자신들의 활동이 세세히 규정되는 게 결코 달가울리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편집인의 자율적 편집 보장’ 조항에 동의하는 이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기자들은 언론사 사주 또는 정부나 광고주 등 외부세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걸 중시한다는 것인데, 거꾸로 현실이 별로 그렇게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조선일보〉 등 세 보수신문 기자들 가운데서도 이 조항 취지에 동의한다는 응답(46.7%)이 위헌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33.3%)을 앞질렀다. 위헌 소송을 제기하거나 법에 반대하는 자사 사주들과 사뭇 다른 태도다.
이는 보수언론 사주들이 신문법에 반대하는 이유가 ‘언론 자유’라기보다는 ‘사주의 영업 활동 자유’임을 다시 확인시켜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주들이 문제삼는 조항 대부분이 경영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신문 경영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할 위험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라면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하다. 특히 일부 보수신문이 돈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한 우리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신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 많다. 위기의 핵심은 역시 신뢰를 잃어가는 데 있다. 보수언론들은 왜 신문이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지, 게다가 자사 기자 상당수도 편집의 자유와 독립 필요성에 공감하는지 반성하는 게 도리다. 신문법을 없애고자 한다면, 헌법소원이 아니라 책임있는 언론 활동으로 법의 필요성 자체를 해소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동아일보] 기업 相生 위해 또 총리실 위원회 만든다니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대회’에서 “(상생은) 기업 자율로 하라”면서 정부의 ‘대기업 팔 비틀기’ ‘겁주기’란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정부가 대기업에 상생 협력을 강요한다’는 비판에 대한 해명이다. 그러나 대기업 대표 20명과 경제단체 대표를 청와대 회의실에 불러 놓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필요성을 역설한 뒤 사실상 ‘상생 서약’을 하게 한 것을 ‘자율’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이 기업 상생의 시대’라는 말은 맞다. 부품, 협력, 하청업체와 동반 성장하지 않고는 대기업도 발전할 수 없다.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상생에 나서고, 사회에 대한 봉사와 기여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꼭 ‘보고대회’란 이름으로, 그것도 청와대에서 이런 행사를 가져야 하는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30대 그룹이 상생 협력을 위해 중소기업에 1조36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국민이 이를 청와대와 산업자원부의 공(功)으로 생각할까. 아마 권위주의 시절의 구태(舊態)를 연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말로는 ‘자율’이라며 상생 협력 대상을 10대에서 30대 그룹으로 확대하고 1차 협력업체 외에 2차 협력업체와도 상생하도록 규정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도 "정부 주도의 상생 협력은 일방적인 자선사업을 하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사회적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원회’ 명패가 이미 넘쳐나는 국무총리실에 ‘상생협력위원회’를 만든다는 발상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이 잘하고 있는 것을 왜 정부가 가져다 담당 공무원을 두고 위원회를 신설해 기업에 보고 의무를 지우는가. 정부는 대기업의 보육시설을 인근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도 개방하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등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아이디어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결국 부담은 기업이 지게 돼 있다. 일은 떠넘기고 생색내기는 일등인 정부다.
[중앙일보] 前職 대통령의 私的 통일방안 논의 신중해야
이수훈 東北亞동북아시대 위원장은 김대중 前전 대통령이 “(6월 방북 때) 이 민족, 1300년 통일된 민족, 부당하게 60년간 분단된 민족을 어떻게 통일할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참 답답하다. 정부 생각과 전혀 다르다. (김 전 대통령 방북) 준비가 너무 煩雜번잡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 위원장의 말에 대해 “妄發망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의 통일방안 논의 발언을 듣고서 우선 들었던 걱정은 전직 대통령이 국가의 운명과 안위가 걸린 통일문제를 북과 논의한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에서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통일’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는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멀고 아득하다. 북한의 核핵과 위조지폐 제조, 인권문제 등 건드리면 터질 듯한 위태위태한 主題주제들이 널려있고 이로 해서 국제적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단계에서 통일 논의를 꺼내는 것은 그보다 火急화급한 문제들을 뒷전으로 돌리는 결과만 가져올지도 모른다.
더구나 오늘의 국내 현실은 대한민국 正體性정체성을 공격하는 일부 세력들이 국민적 지혜를 총동원해 냉철하게 접근해야 할 통일문제를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대중선동 次元차원으로 끌어내려 사회적 분열을 深化심화시키고 있기에 전직 대통령의 통일 논의에 더욱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통일방안을 논의한다면 ‘(김 전 대통령의) 聯合制연합제 통일방안과 북측 낮은 단계 聯邦制연방제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2000년 정상회담 공동선언 내용을 다시 얘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연합제 구상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국회 동의를 거쳐 정부 공식입장이 됐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보완을 거쳐 확정된 民族共同體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는 거리가 있다. 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을 묻지 않고는 통일방안을 바꿔 추진할 권한은 없는 법인데 전직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私案사안을 거론한다는 것은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소지가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달 초 몽골에 가서 “주변국 때문에 선뜻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이 길을 열어주면 나도 슬그머니 할 수 있겠다”고 했었다. 대통령을 수행했던 고위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방북하는데 전적으로 개인자격 방문, 즉 現현 정부 생각이나 정책과 동떨어진 입장에서 방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방북 문제 전체를 調律조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정부가 방북지원단까지 구성해 협의 중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방북 議題의제를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 그저 위태스럽기만 하다.
[중앙일보] 정부 주도 아닌 자발적 상생협력 돼야
청와대에서 주요 대기업 총수와 중소기업인.경제단체장들이 모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를 열었다. 상생협력 대상을 10대 그룹에서 30대 그룹으로 확대하고, 정부는 올해 상생협력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을 다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누가 상생협력과 균형성장을 굳이 반대하겠는가.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 중 상위 5%가 전체 경상이익의 88.8%를 올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뚜렷한 양극화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생협력이 중소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정부의 설명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불공정 하도급 거래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대기업들이 자금력과 기술력이 뒤지는 중소업체를 지원하고 부품대금의 현금 결제, 해외 공동 마케팅 등에 나선다면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상생협력은 청와대에서 다짐대회를 연다고 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특히 중소기업 문제를 오로지 대기업 탓으로 돌리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나 저출산을 막기 위한 보육시설 확충까지 상생협력으로 간주할 경우 대기업의 부담이 지나치지 않은지 따져볼 대목이다.
정부의 역할은 상생협력 분위기만 조성하고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할 것이다. 대기업 손목 비틀기 식으로 진행되면 투자 분위기만 위축시켜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진정한 상생협력의 출발점은 중소기업 보호가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신문] 최저출산에다 이젠 최고속 고령화까지
우리는 몇몇 유쾌하지 않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록을 갖고 있다. 교통사고율이나 청소년흡연율, 술 소비율 따위가 그것이다. 요즘엔 진짜 고민스런 세계 기록을 갖게 됐다. 바로 ‘저출산 고령화’ 추세다. 이 문제는 사회 양극화와 함께 우리 시대가 고민해야할 최우선 과제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노인 인구가 10명 중 1명 꼴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이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5.3%씩 늘어 총 인구의 9.3%인 4백36만명이 된 것이다. 노인인구가 총 인구의 7%면 고령화사회, 14%는 고령사회라고 할 때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속도라고 한다.
저출산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새삼 보여줬다. 4세 이하 인구가 2000년 이후 매년 4.8%씩, 5년간 30% 감소한 것이다. 인구가 현행 수준을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한 여성의 가임기간 중 총 출생아수)이 2.0이 돼야하지만 2005년 들어 1.08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이 2.1%였던 때가 1983년이므로 이 때부터 인구 문제를 고민했어야 했다는 얘기인데, 20년이 지나서야 허둥대는 꼴이다.
고령화는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노인을 노동시장에서 흡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 제도를 뜯어고치는 등의 작업이 긴요하다. 젊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검토할 때가 됐다.
저출산 문제는 어렵지만 정부 정책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산아제한 정책을 펼 때 출산장려책을 써 합계출산율이 우리보다 높아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사례를 보라. 젊은 부부가 ‘아이 낳아 기르기 좋은 사회’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한국일보] 납득하기 어려운 여당의 긴급호소
참 희한한 선거, 괴상한 정치를 다 본다. 열린우리당이 5ㆍ31 지방선거전 막바지에 내놓은 대국민호소문은 이런 일감(一感)을 갖게 한다. 선거운동 지원을 일시 중단하고 긴급회의를 연 것도 그렇지만, 채택한 호소문의 내용은 상식적으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거전 막바지에 여당이 절감하고 있을 낭패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초반의 참패 전망이 완화되기는커녕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 이후 더욱 굳어지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할 전망”이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진단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국민 호소문이 강조했듯, 지방정치에도 견제와 균형은 필요하다. 지방정치에서 독점이 장기화하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리고, 부패와 비효율이 늘어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이른바 싹쓸이 전망을 놓고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마비나 ‘생명을 걸고 지켜온 민주정치체제’의 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과장이 지나치다.
더욱이 민주평화 세력의 위기를 거론한 데서는 국민 일반의 인식과 동떨어진 독선적 오만까지 엿보인다. 설사 선거 결과가 현재의 전망대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을 반민주, 반평화 세력의 창궐이라고 여길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애초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중앙정권 심판론을 희석하기 위해 지방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적어도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로 보아 유권자들은 거기에 공감하지 않았다. 또 이번 선거에서의 선택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4년 뒤의 선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 마련돼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여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달렸다.`
여당이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거론하면서 정계 개편론을 들고 나온 것도 시의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매 맞을 일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달게 벌을 받고, 반성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지지를 되찾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한겨레신문] 기자 과반수가 공감하는 신문법
기자의 과반수가 신문의 사회적 책임과 다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신문법의 기본 취지에 동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위헌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을 두고, 한국언론재단이 신문·방송·통신사 기자 31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다. 특히 편집인을 ‘발행인이 선임한 자’가 아닌 ‘편집에 책임을 지는 자’로 규정하고 편집인의 자율적 편집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은 4명에 3명꼴로 법 취지에 동의했다고 한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주의깊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거나 전문적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언론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시에, 법으로 자신들의 활동이 세세히 규정되는 게 결코 달가울리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편집인의 자율적 편집 보장’ 조항에 동의하는 이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기자들은 언론사 사주 또는 정부나 광고주 등 외부세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걸 중시한다는 것인데, 거꾸로 현실이 별로 그렇게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조선일보〉 등 세 보수신문 기자들 가운데서도 이 조항 취지에 동의한다는 응답(46.7%)이 위헌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33.3%)을 앞질렀다. 위헌 소송을 제기하거나 법에 반대하는 자사 사주들과 사뭇 다른 태도다.
이는 보수언론 사주들이 신문법에 반대하는 이유가 ‘언론 자유’라기보다는 ‘사주의 영업 활동 자유’임을 다시 확인시켜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주들이 문제삼는 조항 대부분이 경영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신문 경영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할 위험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라면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하다. 특히 일부 보수신문이 돈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한 우리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신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 많다. 위기의 핵심은 역시 신뢰를 잃어가는 데 있다. 보수언론들은 왜 신문이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지, 게다가 자사 기자 상당수도 편집의 자유와 독립 필요성에 공감하는지 반성하는 게 도리다. 신문법을 없애고자 한다면, 헌법소원이 아니라 책임있는 언론 활동으로 법의 필요성 자체를 해소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동아일보] 기업 相生 위해 또 총리실 위원회 만든다니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대회’에서 “(상생은) 기업 자율로 하라”면서 정부의 ‘대기업 팔 비틀기’ ‘겁주기’란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정부가 대기업에 상생 협력을 강요한다’는 비판에 대한 해명이다. 그러나 대기업 대표 20명과 경제단체 대표를 청와대 회의실에 불러 놓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필요성을 역설한 뒤 사실상 ‘상생 서약’을 하게 한 것을 ‘자율’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이 기업 상생의 시대’라는 말은 맞다. 부품, 협력, 하청업체와 동반 성장하지 않고는 대기업도 발전할 수 없다.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상생에 나서고, 사회에 대한 봉사와 기여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꼭 ‘보고대회’란 이름으로, 그것도 청와대에서 이런 행사를 가져야 하는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30대 그룹이 상생 협력을 위해 중소기업에 1조36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국민이 이를 청와대와 산업자원부의 공(功)으로 생각할까. 아마 권위주의 시절의 구태(舊態)를 연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말로는 ‘자율’이라며 상생 협력 대상을 10대에서 30대 그룹으로 확대하고 1차 협력업체 외에 2차 협력업체와도 상생하도록 규정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도 "정부 주도의 상생 협력은 일방적인 자선사업을 하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사회적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원회’ 명패가 이미 넘쳐나는 국무총리실에 ‘상생협력위원회’를 만든다는 발상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이 잘하고 있는 것을 왜 정부가 가져다 담당 공무원을 두고 위원회를 신설해 기업에 보고 의무를 지우는가. 정부는 대기업의 보육시설을 인근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도 개방하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등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아이디어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결국 부담은 기업이 지게 돼 있다. 일은 떠넘기고 생색내기는 일등인 정부다.
[중앙일보] 前職 대통령의 私的 통일방안 논의 신중해야
이수훈 東北亞동북아시대 위원장은 김대중 前전 대통령이 “(6월 방북 때) 이 민족, 1300년 통일된 민족, 부당하게 60년간 분단된 민족을 어떻게 통일할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참 답답하다. 정부 생각과 전혀 다르다. (김 전 대통령 방북) 준비가 너무 煩雜번잡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 위원장의 말에 대해 “妄發망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의 통일방안 논의 발언을 듣고서 우선 들었던 걱정은 전직 대통령이 국가의 운명과 안위가 걸린 통일문제를 북과 논의한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에서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통일’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는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멀고 아득하다. 북한의 核핵과 위조지폐 제조, 인권문제 등 건드리면 터질 듯한 위태위태한 主題주제들이 널려있고 이로 해서 국제적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단계에서 통일 논의를 꺼내는 것은 그보다 火急화급한 문제들을 뒷전으로 돌리는 결과만 가져올지도 모른다.
더구나 오늘의 국내 현실은 대한민국 正體性정체성을 공격하는 일부 세력들이 국민적 지혜를 총동원해 냉철하게 접근해야 할 통일문제를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대중선동 次元차원으로 끌어내려 사회적 분열을 深化심화시키고 있기에 전직 대통령의 통일 논의에 더욱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통일방안을 논의한다면 ‘(김 전 대통령의) 聯合制연합제 통일방안과 북측 낮은 단계 聯邦制연방제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2000년 정상회담 공동선언 내용을 다시 얘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연합제 구상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국회 동의를 거쳐 정부 공식입장이 됐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보완을 거쳐 확정된 民族共同體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는 거리가 있다. 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을 묻지 않고는 통일방안을 바꿔 추진할 권한은 없는 법인데 전직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私案사안을 거론한다는 것은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소지가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달 초 몽골에 가서 “주변국 때문에 선뜻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이 길을 열어주면 나도 슬그머니 할 수 있겠다”고 했었다. 대통령을 수행했던 고위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방북하는데 전적으로 개인자격 방문, 즉 現현 정부 생각이나 정책과 동떨어진 입장에서 방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방북 문제 전체를 調律조율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정부가 방북지원단까지 구성해 협의 중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방북 議題의제를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 그저 위태스럽기만 하다.
[중앙일보] 정부 주도 아닌 자발적 상생협력 돼야
청와대에서 주요 대기업 총수와 중소기업인.경제단체장들이 모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를 열었다. 상생협력 대상을 10대 그룹에서 30대 그룹으로 확대하고, 정부는 올해 상생협력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을 다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누가 상생협력과 균형성장을 굳이 반대하겠는가.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 중 상위 5%가 전체 경상이익의 88.8%를 올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뚜렷한 양극화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생협력이 중소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정부의 설명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불공정 하도급 거래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대기업들이 자금력과 기술력이 뒤지는 중소업체를 지원하고 부품대금의 현금 결제, 해외 공동 마케팅 등에 나선다면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상생협력은 청와대에서 다짐대회를 연다고 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특히 중소기업 문제를 오로지 대기업 탓으로 돌리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나 저출산을 막기 위한 보육시설 확충까지 상생협력으로 간주할 경우 대기업의 부담이 지나치지 않은지 따져볼 대목이다.
정부의 역할은 상생협력 분위기만 조성하고 자발적인 협력을 유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할 것이다. 대기업 손목 비틀기 식으로 진행되면 투자 분위기만 위축시켜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진정한 상생협력의 출발점은 중소기업 보호가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신문] 최저출산에다 이젠 최고속 고령화까지
우리는 몇몇 유쾌하지 않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록을 갖고 있다. 교통사고율이나 청소년흡연율, 술 소비율 따위가 그것이다. 요즘엔 진짜 고민스런 세계 기록을 갖게 됐다. 바로 ‘저출산 고령화’ 추세다. 이 문제는 사회 양극화와 함께 우리 시대가 고민해야할 최우선 과제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노인 인구가 10명 중 1명 꼴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이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5.3%씩 늘어 총 인구의 9.3%인 4백36만명이 된 것이다. 노인인구가 총 인구의 7%면 고령화사회, 14%는 고령사회라고 할 때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속도라고 한다.
저출산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새삼 보여줬다. 4세 이하 인구가 2000년 이후 매년 4.8%씩, 5년간 30% 감소한 것이다. 인구가 현행 수준을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한 여성의 가임기간 중 총 출생아수)이 2.0이 돼야하지만 2005년 들어 1.08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이 2.1%였던 때가 1983년이므로 이 때부터 인구 문제를 고민했어야 했다는 얘기인데, 20년이 지나서야 허둥대는 꼴이다.
고령화는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노인을 노동시장에서 흡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 제도를 뜯어고치는 등의 작업이 긴요하다. 젊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검토할 때가 됐다.
저출산 문제는 어렵지만 정부 정책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산아제한 정책을 펼 때 출산장려책을 써 합계출산율이 우리보다 높아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사례를 보라. 젊은 부부가 ‘아이 낳아 기르기 좋은 사회’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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