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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여행기

eros 2006. 4. 20. 22:29

 

 7월 16일

 마낭에서 휴식  (고소적응 훈련)


2번째로 휴식하는 날이다. 고산병 없이 무사히 트레킹에 성공하고 싶으면 자주 쉬면 된다. 이것은 간단하고 심오한 진리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이 진리를 망각한다.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가 체력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지 빨리도 걷는다. 이번에 동행했던 주부들은 높은 산에 처음 온 이유로 출발부터 겁을 먹어 가이드의 말을 잘 듣는다. 지금까지 단 한명도 고산병의 초기증세인 두통을 호소한 사람이 없다.

어설프게 알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카트만두의 빌라에베레스트의 매니저로 있을 때 이런 어설픈 여행객들을 많이 봤었다. 필자가 네팔에 처음 온 초보여행자에게 그들이 가고 싶은 코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면 가끔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대화에 끼어 든다. 내가 몇 시간 동안 입에 침이 마르게 설명한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반박하고 나선다. 답답한 심정에 "몇 번이나 트레킹을 해봤습니까?"라고 물으면 엉터리 여행자 왈 "네팔에는 처음이지만 그 코스에는 가봤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이상 할말이 없어진다.

타인에게 트레킹 정보를 알려주려거든 꼭 계절, 날씨, 체력, 일정, 나이 등 전반적인 면을 고려한 후에 설명해주길 바란다. 특히 "가이드,포터는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삼가기 바라는데, 무턱대고 산에 올랐다가 고산병으로 쓰러져 영영 집으로 못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현지 가이드를 채용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책임지고 손님을 안전지대까지 모시고 내려온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마낭에서는 꼭 하루를 쉬며 고소적응을 해주길 바란다. 예비일 이라고 그냥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 오후에는 손님들을 모시고 마을길을 따라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전통가옥을 둘러봤다. 하루종일 누워 잠을 자는 것보다는 틈틈이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다.
 

 7월 17일

마낭 출발 -> 야크카르카(3,970m) 도착


오늘은 야크카르카(YAK KHARKA 3,970m)까지 간다. 하늘에 구름이 적당히 있어 걷기에는 딱 좋은 날씨가. 지금이 우기라 비가 많이 내려 운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었는데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굵은 비는 오지 않는다. 2시간 동안 천천히 걸어 중간 지점에 위치한 군상(GUNSANG 3,890m)에 도착했을 때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서둘러 비옷을 꺼내는 사람들은 없다. 얼굴에 점점이 묻은 빗방울을 닦으며 길 옆 롯지에 들어갔다. 야크수쿠티(훈제한 야크고기)와 밀크티(MILK TEA)를 주문해 맛있게 먹으며 오늘 가야되는 일정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 받는다. 앞으로 2시간만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네팔을 여행할 때 제일 많이 마시는 음료가 바로 밀크티이다. 밀크티는 TEA+MILK+SUGAR로 만들고 고산지대에서는 수분보충과 피로회복 음료로 제격이다. 카트만두에서는 1잔에 5루피, 산에서는 15루피∼20루피를 받는다. 마낭을 출발해 옛날 야크를 방목하기 위해 오두막이 있었던 야크카르카까지는 4시간이 소요되었다.
 

 7월 18일

 야크카르카 출발 -> 토롱페디(4,450m) 도착


야크카르카에는 좋은 시설의 롯지나 호텔이 없다. 여기부터 좀솜(JOMSOM)까지는 문화혜택(?)을 받기가 힘들다. 우기에는 남보다 아침에 빨리 출발해 좋은 롯지를 구하는 것이 편안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오늘은 토롱페디(THOROUNGPHEDI 4,450)까지 간다. 우리는 내일 그곳에서 하루의 휴식을 더 가질 예정이다. 그곳에는 2개의 롯지가 있는데 계곡바닥에 있는 것이 마르샹디 롯지이고 좌측 언덕 위에 있는 것이 그래도 시설이 괜찮은 쏘롱베이스캠프 롯지다. 누군가가 서둘러  가서 좋은 방을 예약해야만 2일 동안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가이드 두루바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토롱페디로 가는 도중에 우리를 앞질러가는 스웨덴, 덴마크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도 빨리 가야만 좋은 방을 예약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지 서두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유가 있다. 벌써 2시간 전에 두루바가 토롱페디로 떠났고 지금쯤 상태가 좋은 방 3개를 예약했을 것이다.  늦게 가는 사람에게는 공동숙소인 도미토리(DORMITORY)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아주 천천히 그리고 한가로운 트레킹을 즐겼다. 토롱페디까지 4시간 소요.
 

 7월 19일

 고소 적응차 휴식


어제 두루바가 서둘러 방을 잡은 덕택에 우리는 편안히 숙면을 취했다. 오늘 아침 메뉴는 양파 스프와 감자볶음이다. 손님들이 손수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한다. 그런데 롯지 주방에 손님이 들어가는 것은 실례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사전에 롯지의 사장에게 양해를 구해놓는다. 네팔말로 부탁을 하면 대부분 친근감을 느끼며 다른 손님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해준다. 내일은 이 코스의 제일 어려운 구간인 토롱라 고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4,000m를 넘으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한낮의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훌라'라고 부르는 카드게임을 했다. 고소에서는 머리를 많이 쓰는 고스톱보다는 단순한 카드게임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낮에 시작한 카드게임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된다. 고소에서 일찍 잠이나 자지 무슨 카드게임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아무 하는 일이 없어, 오랜 시간 잠만 자면 산소 섭취량이 오히려 줄어든다. 잠을 자는 시간에는 심호흡이 안되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롯지 근처의 언덕이나 계곡을 천천히 걸으며 호흡을 조절하는 것도 고소적응에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철학서적, 영어단어 암기 등 머리를 혹사하는 행위도 자제해 주시길...